지난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경주남산연구소 답사단과 함께 중국 안후이성 구화산(九华山)을 찾았다. 이번 답사는 신라 왕족 출신으로 중국 불교에서 지장보살의 화현으로 숭앙받는 김교각 지장보살의 유적을 조사하고, 관련 문헌과 전승을 확인하기 위한 학술답사였다.이번 답사의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는 구화산 불교문화와 김교각 연구의 권위자인 비업조(费业朝) 교수와 약 두 시간 동안 심도 있는 대담을 가진 일이다. 비업조 교수는 ‘구화산화성사기(831년)’를 집필한 비관경(费冠卿)의 후손으로, 평생 구화산 불교문화와 김교각을 연구해 온 학자이며, 저서 ‘문화구화’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김교각 지장보살의 신라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한 대표적인 친한(親韓) 학자이기도 하다.필자는 이번 대담에서 동아시아 토종견 전파사와 관련해 오랜 시간 학계 안팎에서 논의되어 온 한 가지 화두를 던졌다. "신라 왕족 김교각 지장보살이 당나라로 갈 때 함께했다는 백구 설화는 한국의 삽살개 전통과 어떻게 연결 지어 바라볼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분명하다. 현재 국내의 여러 대중 매체와 일부 연구에서는 구화산의 신수(神獸)인 제청(谛听)이나 김교각 지장보살의 백구를 한국의 삽살개 문화와 연결하며 흥미로운 문화사적 담론을 형성해 왔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 토종견의 역사적 외연을 넓히고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다만, 이러한 상징적 연결고리가 한·중 양국 학계의 객관적이고 공식적인 문헌 고증을 통해 어떻게 뒷받침되고 보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은 다각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비업조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당나라 시기의 가장 오래된 문헌에는 김교각 지장보살이 백견(白犬)을 데리고 왔다는 기록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백구 이야기는 명나라와 청나라를 거치며 지장신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점차 형성된 전승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국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라는 것이다.또한 불교 문헌에 등장하는 `선청(善听)`과 오늘날 구화산에서 사용하는 `제청(谛听)`의 관계도 설명하였다. 초기 문헌에서는 `선청`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고, 이후 `제청`으로 변화하였다. 현재 구화산 화성사와 육신보전, 박물관, 불교 공예품, 관광 안내문 등에서는 모두 `제청`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구불상(九不像)`에 대한 설명이었다. 교수는 제청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신비로운 형상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개를 기본 형상으로 하면서 사자·소·기린 등 여러 상징적 동물의 특징이 민간신앙과 불교문화 속에서 점차 더해져 오늘날의 모습으로 발전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다시 말해 구불상은 특정 견종을 표현한 조형물이 아니라, 다양한 상징이 결합된 불교적 신수라는 것이다. 실제 화성사 박물관에 전시된 청동 제청상 역시 이러한 도상학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아울러 ‘도명화상환혼기’에 등장하는 금모사자와 여러 신통력에 관한 내용 역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청나라 이후 민간신앙과 희곡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덧붙여진 종교적·문학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견해도 함께 제시하였다.이번 구화산 답사는 필자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학문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을 찾아 문헌을 확인하고, 전문가와 토론하며, 새로운 자료를 통해 사실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김교각 지장보살과 함께 당나라에 왔다는 신라 백구 이야기는 한·중 문화교류사에서 매우 흥미롭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된 중국의 문헌과 현지 연구 성과를 종합하면, 이를 곧바로 한국의 삽살개라고 단정하기에는 역사적·학술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앞으로는 대중매체와 관광해설은 물론 학술 단행본과 논문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전승을 반복하기보다 문헌과 현장조사, 그리고 국내외 연구 성과를 함께 교차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역사와 전승을 바르게 이해하고 동아시아 불교문화와 우리 토종견의 역사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답사에서 구화산 화성사 박물관의 제청 청동상 모조품 한 점을 경주로 가져왔다. 그것은 김교각 지장보살 신앙과 동아시아 불교문화가 빚어낸 상징이다. 천여 년의 시간을 건너 그 상징이 다시 김교각의 고향 경주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이번 답사의 가장 큰 의미이다.
최종편집: 2026-08-31 08:33:27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오늘 주간 월간
제호 : 경도일보본사 : 경상북도 경주시 xxxxxxxxxxxxxxxxxxxxxxxxxxx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북, 아XXXXX 등록(발행)일자 : 20xx년 xx월 xx일
발행인 : 박준현 편집인 : 박준현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준현 청탁방지담당관 : 박준현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박준현
Tel : 010-xxxx-xxxxe-mail : gdib@gdib.kr
Copyright 경도일보 All rights reserved.